회사에서 한달에 한번 보내주는 야채가 왔다.
'오창 농산물꺼리~' 라는 문자가 오면 한달에 한번 설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복날에는 삼계탕 할만한 재료들을 보내주곤 하는데, 가끔은 쌀 4kg가 들어있기도 하다.
이번에는 콩나물, 가지,애호박, 프레쉬한 상추(정확한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등등,
이 야채 박스가 2017년에 처음 받았을 때, 괜시리 뿌듯하기도 했었다.
제대로 취직도 못하고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던 때, 남들처럼 취업해서 고주임이라던가, 고대리라던가,
직급으로 이름이 불리고 싶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SK증권에 입사하게 되면서
집으로 보내진 '오창 농산물꺼리~'를 처음 받았을때 그렇게 뿌듯할 줄은.
생각해보면 창피한줄도 모르고, SK증권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면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모두가 다, 지나가면 한 때 는 자랑스러웠던, 지나가면 부끄러운 기억들이었다.

가지 하나를 가지런히 썰고, 비슷한 두께로 애호박도 썬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방울토마토는 3등분하여 자른다.
에어프라이에 돌릴 하얀 색 밧드에 켜켜이 번갈아 쌓는다.
가지하나, 애호박하나, 그리고 토마토 하나, 상대적으로 토마토는 크기가 작아 그냥 애호박 가지만 가지런히 겹치고,
토마토는 그냥 따로 위에 올린다. 약간 장식처럼.
꼭 이렇게 야채를 썰고있으면 봄이가 와서 반짝이는 눈을 하고 앉아있는다.
가지나 애호박은 맛이 없을 테니까, 방울 토마토를 살짝 잘라서 입에 넣어준다.
생각해보니 또 스테비아 방울토마토라 너무 달다. 너무 달아서 조금만 줘야겠다.
이 녀석은 내 마음도 모르면서 또 보챈다.
생각해보니 나는 라따뚜이를 밖에서 먹어본 적이 없다. 그나는 라따뚜이를 그냥 생쥐나오는 영화로 알고있다.
2014년 정도, 수원의 집 근처에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요리show를 엄마랑 보러 간 적이 있다. 정확히는 초청행사 같은 것 이었는데,
백화점에서 일하시는 엄마 지인이 같이 구경가자고 했던 것 같다. 그때 왠 단발머리의 안경 쓴 남자가 라따뚜이를 조리하는 show였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요리에 대한 로망이 없기도 했고, 또 스타쉐 프들이 지금처럼 유명세를 얻기 전 이었기도 하다.
10년 전에 봤던 라따뚜이를, 나는 지금 만들고있다.
겹겹히 쌓여진 가지와 애호박, 그리고 장식처럼 올려진 토마토위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그라인더로 갉아내어 뿌리는 이 행위가 왠지 멋부리는것 같아서 부끄럽다.
올리브유를 충분히 위에 뿌려주고 에어프라이어 190도에 15분을 돌렸다.
원래 라따뚜이는 여기에 토마토소스를 뿌리면 끝이지만, 나는 여기에 파스타를 곁들인다.
떠 먹기 좋은 마카로니를 삶으면서, 약간 꼬들한 식감인 알덴테를 좋아하지만 와이프는 좀 더 말랑한 잘 익은 텍스쳐를 좋아하니까 더 삶아야겠다.
15분이 다되어 갈 즈음, '띵-'하고 울리는 종료음을 들으면서, 그대로 시판 토마토 소스를 밧드 위로 붓는다.
탱글하니 윤기나게 삶아진 마카로니도 함께 넣고, 3분정도 에어프라이어에 다 돌린다.
거의 다 돌아갈 쯔음, 또 와이프를 깨우러간다.
그나야 밥먹자.